신에 대한 고찰

인간은 본능적으로 신을 찾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힘들 때이든 기쁠 때이든 보이지 않는 어느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인간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심리학적으로 그런 생각이 뇌와 몸에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일 지라도, 자신 이외의 주변 상황까지도 변하는 것은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정말로 신이 존재해서 내게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나는 그것에 대한 확신이 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내 삶은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20대 초반부터 계속되는 실패로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은 바닥까지 치닫았고,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었을 때였다. 누구나 최악의 상황에서 그렇듯, 나는 신께 기도를 드렸다.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세요. 예전처럼 음악을 좋아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더 이상 게을러지지 않게 해주세요. 저를 부정적인 것들로부터 멀리하게 해주세요. 못난 저에게 이렇게라도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해서 죄송합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마음 속으로 달고 사는 말이 있었다. “하느님,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내 삶엔 서서히 변화가 찾아왔다. 매일같이 마시던 술을 멀리하게 되었고, 한 때 내 삶을 좀먹던 게임도 멀리하게 되었다. 작은 일에도 혼자 짜증내고 화내고, 우울해했던 성격이 바뀌었다. 나쁜 일에는 더 나쁘지 않은 것에 감사하게 되고, 사소한 일에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그저 자연스럽게 나의 부정적인 것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뒤로는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몇 번이고 그런 기회들을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스스로 차버렸었다. 하지만 내가 차버려도, 그 기회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내 주변의 많은 분들이 보잘것 없는 나를 조건 없이 많이 도와주셨다.

내 주변의 환경도 변했다.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 부모님이 싸우시는 일이 잦았다. 하루는 꿈 속에서 부모님이 지금껏 보지 못한 모습으로 화기애애하게 서로를 칭찬하시며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나는 꿈을 깨고 신께 기도했다. 우리 가족이 꿈처럼 화목하게 해주세요.. 그 때 마침 처음으로 저작권료를 받게 되었는데, 난 그 돈으로 부모님의 빚을 갚는 데 도움을 드렸다. 그 뒤로 신기하게도 꿈이랑 똑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근 몇년 간 본 적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셨다.
난 비록 집이 부유하지 못해도 가정이 화목하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돈 문제로 부모님께서 싸우시는 모습을 보고 자란 덕인지 장남인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자마자 주식도 하고 사업도 해보고 결국엔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신은 내게 음악 외의 다른 일로 돈 버는 걸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신기하게도 하는 것마다 실패를 했다. 물론 그 땐 신은 내 마음 속에 없었다. 그리고 작년, 처음으로 받은 저작권료 단돈 백만원으로 내가 그토록 원했던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그리도 쉽게 얻게 된 것이다.

중요한 선택지가 있을 땐 신께 여쭈었다. 과연 이렇게 하는게 옳은 걸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디 알려주세요.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세요.
간절히 기도하고 귀를 기울이자 마음 속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노력하면 노력하는 만큼, 게으르면 게으른 만큼, 행동하는 만큼의 결과가 있으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난 항상 내가 게으르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신은 인간이 하는 만큼 딱 그 정도의 공평한 보상을 주시는데, 나는 그것을 알고서도 내가 정말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신께 죄송한 마음이었다.

내가 오늘날의 변질된 기독교의 해석과 교리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신께 감사함을 표할 땐 온 몸으로 따뜻함과 사랑을 느끼는 것만은 확실하다. 마치 추운 몸을 따뜻한 욕조에 담그는 것처럼 내 몸 전체를 따뜻한 무언가가 감싸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마음 속에 신을 두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어떤 무신론자가 감히 신이 없다고 소리칠 수 있을까? 신을 비난하다못해 조롱하는 일부 극단적인 무신론자들은 정말로 불행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다. 성격 또한 매우 거칠다. 쉽게 절망하고 외로움도 잘 탄다. 또한 세상에 대한 감사와 사죄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기적이고 거만하며 비양심적이다.

양심은 신이 주신 마음이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종교인이든 아니든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다. 신x지나 IS같은 비양심적인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종교는 인간의 신앙심을 교묘히 이용해 인간을 신으로부터 더욱 떨어뜨려놓는다. 기성 교회도 반성해야 한다. 크게 실망한 점은 양심을 잃은 종교인이 정말로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는 돈을 밝히며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다단계와 별다를 게 없어보였다. 나쁜 짓을 하고도 신께 용서를 빌기만 하면 천국에 쉽게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남을 속여서라도 교회에 끌고 오면 신이 기뻐하리라 생각한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인간은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해선 안된다. 행동에 따라서 그에 맞는 결과를 얻는 인과응보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 결과가 즉시 드러나든 죽은 뒤 드러나든 간에..
굳이 십계명을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 마음 속의 양심에는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본능적으로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그 불편함은 끝내 그에게 부정적인 결과로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갈 것이다.

신의 존재유무는 죽기 전까진 그 누구도 증명할 수 없다. 다만 인간은 신앙심을 가지게끔 만들어진 생명체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앙심은 인간을 보다 선하고 올곧게 만든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신과 대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굳이 남에게 드러낼 필요도 없다. 단지 든든한 내 편을 마음 속에 두는 것 만으로 당신의 삶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