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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이 나아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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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강민훈
작성자
강민훈
BLOODMOON

거리를 거닐며 쇼핑을 하든, 식당에서 음식을 먹든 우리 곁에는 항상 음악이 존재한다. 우리의 귀는 무수한 음원(音源)의 바람을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맞으며 그 음악들에 길들여지고 있다.

우리들이 어디서든 항상 들을 수밖에 없는 음악, 소위 말하는 대중음악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의 발자취 뒤로는 언제나 진실하고 소박한 대중음악이 민중의 마음을 감싸 안으며 사랑받아왔다.

그러나 지금의 대중음악은 사랑받기는커녕 천덕꾸러기 신세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중을 위해 유통되는 대중음악은 나날이 다양성과 창의성을 잃고 있으며, 마침내 대중에게 수많은 비수와 버림을 받는 지경에까지 올랐다. 그로 인해 음악시장이 침체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이러한 사태를 놓칠세라 수많은 비평을 쏟아내며 프로듀서(제작자)와 청취자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평론의 방식과 틀이 확립되어 있는 클래식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대중음악은 그 성향이 극히 주관적이며 애매모호하다. 청취자로서는 이 음악이 좋다고 느끼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남이 좋아서 듣는 곡의 옳고 그름을 따진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나하나 짚으며 넘어가기에는 우리의 음악계가 안고 있는 상처와 오해가 너무나도 깊다.

이제 시야를 좀 더 넓혀 원론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본 글에서는 현 대중음악계의 실태를 기획사, 프로듀서, 대중의 행적에 비추어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비평하고, 나아가 이상적인 음악시장으로 성장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여느 대중문화가 그렇듯, 대중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대중음악은 다수의 소비층을 끌어들여 수익을 창출하는 일종의 서비스업이다. 때문에 기획사와 프로듀서는 일반적으로 수익성을 가장 우선시하게 된다.

수익성은 곧 대중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우선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시도들이 성공했었는지를 따지게 된다. 그 다음으로, 대중 전체를 기준으로 한 음악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이해하기 쉽고 익숙한 느낌의, 부담 없는 음악에 초점을 둔다. 마지막으로 염두에 두는 것이 다양성과 독창성이다.

이러한 조건을 가장 잘 충족시킨 프로듀서가 소위 유행가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러나 세 번째 조건이 지닌 리스크를 두려워한 대부분의 프로듀서들은 지금까지 성공했던 유행가의 아류작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물론, 새로운 작품의 영향으로 음악계가 차츰 진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파생작이 뒤따르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너도나도 유행을 따라 급조된 음악을 출판하고 있으니 우리의 귀에 들어오는 음악은 한결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표절 시비이다. 현 가요계는 표절 시비에서 조용한 날이 없다.

지난 표절음반 관련 기사(Naver 제공)의 통계를 보면, 2003~2004년 51건, 2005~2006년 183건, 2007~2008년 현재 409건으로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네티즌과 언론의 막무가내식 표절 시비는 지양해야 할 사항이지만, 실제로 표절곡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로 해외의 대중음악에 영향을 받은 곡들이 문제시되는데, 그것은 음악의 다양성 측면에서 봤을 때 대중 입장에선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소위 프로로 일컫는 작곡가가 하루 이틀에 한 곡씩 급조하여 내놓는 곡은 유행하는 화성(和聲)진행과 선율적 테크닉으로 가득하다. 두 경우 모두 대중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수는 없다.

음악이란 것이, 인간이 만드는 이상 비슷한 곡이 나올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유난히 우리나라 곡이 대내외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그 정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연계하여 꼽을 수 있는 문제점이 바로 현 음악계에 활동하고 있는 프로듀서의 다양성이 결여된 점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익숙한 음악을 위해 위험 부담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기획사는 프로듀서를 선택함에 있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많거나 학벌이 뛰어난 사람, 즉 경력이 화려하고 실력이 보장된 사람을 쓰는 것을 리스크를 줄이는 데 필수 조건으로 여긴다. 그로 인해 현재 대중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프로듀서들은 극명하다. 마치 소수정예부대와도 같이, 돌아가며 가수들의 최신 음반을 독식한다. 대중음악의 판도는 그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아무리 다양한 음악을 만들려 노력한다 해도, 소수의 작곡가에게서 다양해봤자 얼마나 다양한 음악이 나올 수 있겠는가.

기획사는 자사의 간판이 되는 신인 가수들을 발굴하기에는 여력이 없지만 프로듀서를 선택하는 일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고 보수적인 편이다.

음악시장 쪽에서 우리와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은 그와 대조적이다. 일본의 대중음악은 그 장르부터가 다양하고 실험적이다. 음악시장의 규모를 떠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프로듀서의 다양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대중음악 가수는 젊을수록, 프로듀서는 풍부한 경험을 가질수록 좋다고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만은 않다. 일례로 SAS, Mr.Children과 같은 30~50대의 중후한 밴드들이 폭넓은 연령층의 팬을 확보하며 탑의 위치를 차지하거나, 20세의 젊은 프로듀서가 신인 가수들을 출시하여 오리콘 차트(Oricon chart, 음반 판매량으로 매겨지는 일본의 음악 랭킹 집계 서비스)에 오르는 등의 케이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일본이 세계적인 음반시장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한국의 대중음악계가 적지 않은 골칫거리를 안고 있는 것이 모두 기획사와 프로듀서의 탓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대중음악의 주축은 어디까지나 대중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기획사가 프로젝트를 출시하기에 앞서 가장 고려하는 부분은 ‘대중이 어떤 음악을 원하느냐‘ 이다. 기본적으로 공급자 측이 수익성을 위해 수요자의 기호를 따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한 까닭에, 대중매체를 통해 제공되는 음악은 대체로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장르로 편중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수준이 지나칠 정도이다. 하지만 대중은 새로운 것을 찾기보단 대중매체가 제공해주는 음식을 곧이곧대로 받아먹는 데 그친다. 또한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닮은꼴의 음악에 대해 의구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실제로 국내 음악 전문 사이트들의 인기가요 순위 TOP 100 중 80% 이상이 발라드와 댄스 음악에 치중된 것은 대중의 장르 선호도가 얼마나 극단적인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한때 실험적이며 진취적인 음악들로 대중음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서태지마저도 지금의 대중음악계에 쉽사리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이제껏 국내에서 접해보지 못한, 새롭고 다양한 요소를 가득 담은 4년 만의 신보(新譜)가 대중에게는 쉽게 와 닿지 않는 모습이다. 대중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익숙한 것만을 들어온 대중의 귀는 굳을 대로 굳어있다. 많은 프로듀서들이 대중들의 무관심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만의 것, 새로운 것을 쉽사리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중은 들을 음악이 없다고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왜 들을 음악이 없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대중의 소극적인 태도와 일방적인 수용은 공급자로 하여금 ‘대중은 이런 음악만을 원하는 구나.’ 라는 식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기획사, 프로듀서, 대중의 세 얼굴이 보다 면밀히 드러나게 되었다. 이 셋은 오랜 시간동안 풀리지 않은 캐스트퍼즐 마냥 얼기설기 엉켜 있다. 이것을 풀기 위해서는 어느 한 부분만 건드려서는 소용이 없다. 서로의 입장에 귀 기울이고 현재의 상황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프로듀서는 자신만의 그것을 어필할 수 있는,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대중의 요구사항이 늘어남에 따라 음악시장도 진화하고 있다. 공업의 생산방식에 비유하자면, 소품종 다량생산이 아닌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그 퀼리티를 높여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기획사는 보다 많은 프로듀서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부여하여 치열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대중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새로운 것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세 입장이 대화의 장을 마련하여 꾸준히 접촉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공모제이다.

최근 들어 소규모 음악 관련 업체뿐만 아니라, 몇몇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도 창작가요 등을 공모하는 모습이 보인다. 컴퓨터음악의 발달로 누구나 음악 제작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가 직접 녹음한 음반을 들고 기획사를 찾아 뛰어다니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획사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모의 심사는 대중에게 투표로 맡기는 것이 좋다. 대중은 아마추어들의 참신한 음악을 평가하며 귀를 넓혀나갈 수 있을 것이고, 프로듀서와 기획사는 그러한 대중의 선택을 분석하여 보다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M. 글린카(Mikhail Glinka)가 말한 바 있듯, 음악은 국민이 만들고 작곡가는 그것을 배열할 뿐이다. 아이러니한 것 같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기획사가 대중에게 보다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대중은 음악적 안목을 넓힐 수 있을 것이며, 점차 대중은 국내의 음악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질 것이다.

프로듀서는 대중의 말에 항상 귀 기울이며 그들이 갈구해왔던, 앞으로 갈구하게 될 음악을 손에 쥐어주면 되는 것이다.

서로가 불만을 가지고서도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기만 한다면 변하는 것은 없다. 이제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 우리의 음악계를 한 차원 끌어당길 도화선에 불을 붙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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